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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증권 60번째 생일…가장 유니크한 사업모델 갖춘 회사로 탈바꿈
작성일2022-06-15
■ 부침 심했던 한국자본시장에서 60년 생존…이제는 100년 가는 기업 꿈꿔
■ 탄탄한 리스크관리 시스템…IMF 당시 5대 대형사 중 유일하게 생존
■ 50년보다 컸던 최근 10년간의 변화…업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사업모델
■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 통해 새로운 고객가치 제공
■ 지난 해 사상최고실적 기록…금융그룹 성공가도 본격화

대신증권이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대신증권은 오는 20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60년 사진전, 헌혈, 문화강연’ 등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행사를 통해 회사가 걸어온 60년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을 예정이다.

대신증권의 창립 60주년은 부침이 유독 심했던 한국자본시장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탄탄한 리스크관리 시스템과 인적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은 1962년 삼락증권으로 출발했다. 1975년 故 양재봉 창업자가 인수해 대신증권으로 사명을 바꾼 후, 한국자본시장을 대표하는 플레이어로서 성장해 오고 있다. 60년 동안 외환위기(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 자본시장의 온갖 부침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경제사변이라 불릴만한 1997년 IMF사태도 꿋꿋하게 견뎌냈다. 당시 5대 증권사였던 대신, 대우, 동서, 쌍용, LG 중 현재 회사가 없어지거나 경영권이 바뀌지 않은 곳은 대신증권이 유일하다. 1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국내 은행들도 IMF를 겪으며 파산과 피합병의 진통을 겪었다.

국내 금융투자회사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글로벌IB들도 파산하거나 경영권이 바뀌는 일이 숱하게 벌어졌다.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유수의 글로벌투자은행(IB)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파산하거나 경영권을 잃었다. 이렇듯 금융기관의 역사는 곧 위기극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계 금융투자회사로서 대신증권의 60년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IB, HTS로 증권업계 주름잡다
대신증권은 한국자본시장을 선도하며 성장했다. IB명가로서 이름을 떨쳤고, 주식중개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달려왔다. 증권업의 핵심 경쟁력인 인재와 시스템 측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1991년 업계최초로 인수합병(M&A) 주선업무 겸영인가를 얻어냈고, 90년대 수많은 인수 주선 딜을 성공시키며 ‘인수 대신’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기업을 공개하려면 대신증권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공개(IPO)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IT부문의 활약은 더 대단했다. IT 불모지였던 증권업계에 전산화 바람을 일으켰다. 1976년 전산터미널을 도입하고, 1979년엔 객장에 전광시세판을 설치했다. 분필로 흑판에 시세를 적던 시절이었다. 모두 업계 최초 전산화 시도였다. 국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시작인 ‘사이보스’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누적사이버거래액 1,000조원을 최초로 돌파하는 등 온라인 증권거래 시장을 이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대신증권의 업계 지위에 변화가 생겼다. 우수한 IB인력들이 빠져나갔고, 저가수수료로 무장한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주식중개 부문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증권업의 트렌드도 변하기 시작했다. 중개업의 시대가 저물고 투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자본의 크기가 증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며 금융지주, 대기업계열의 금융투자회사는 앞다퉈 자기자본 확충에 나섰다.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비즈니스 영역이 결정됐고, 자본크기가 신규비즈니스에 대한 진입장벽이 됐다. 증권을 모태로 성장한 독립계 증권사였던 대신증권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대형화 바람 속 ‘차별화’ 길 걸어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형화 바람 속에 대신증권이 선택한 길은 차별화였다. 제한된 자기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증권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금융기관을 인수하고, 새롭게 인가를 받아 신규비즈니스에 진출했다.

출발은 저축은행 인수였다. 2011년 8월 중앙부산, 부산2, 도민저축은행의 자산을 자산·부채 인수(P&A) 방식으로 인수했다. 대신저축은행은 출범 10년 만에 총자산 기준 15위권 회사로 성장했다. 2014년에는 우리에프앤아이를 인수해 대신에프앤아이를 출범시켰다. 주력사업인 부실채권(NPL) 비즈니스는 물론 부동산 등 대체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계열사를 통해 국내 최고급아파트 ‘나인원한남’ 개발사업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2019년에는 대신자산신탁을 설립해 부동산 신탁업을 시작했다. 자산관리회사(AMC)인가를 받고 리츠 시장을 본격 공략하며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경쟁력을 높였다. 글로벌투자 확대를 위해 미국 뉴욕, 싱가포르, 일본 동경에 현지법인도 설립했다.

대신증권은 이 같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고객 자산관리에 대한 고민이 기반이 됐다. 부동산을 활용하지 않고는 고객들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증권은 기존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과 에프앤아이, 자산신탁 등 부동산 부문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 대신금융그룹은 증권과 자산신탁 등 그룹의 시너지를 활용해 하반기 글로벌리츠 상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대신증권은 사업다각화를 통한 차별화로 지난 60년 중 최근 10년 동안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과거 ‘주식과 채권만 하는 회사’였다면, ‘주식과 채권도 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본격적으로 금융그룹으로서 성장가도를 걷기 시작했다. 최근 10년간 대신증권이 보유한 100% 자회사는 세 배가 늘었다. 이들과 함께 지난 해에는 연결기준 영업이익 8,855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실적이다. 금융그룹으로서의 성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안팎의 평가가 나온다.

명동시대 재개막…사옥명 ’Daishin 343’
대신증권은 1976년 현 명동예술극장(구 국립극장)을 첫 사옥으로 가졌다. 당시 명동은 금융의 중심지로 대신증권 명동사옥의 전광시세판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1980년대 정부 자본시장 활성화 방침으로 여의도로 새로운 사옥을 지어 이전했고, 지난 2016년 말 32년 만에 명동으로 돌아왔다. 총 7개의 계열사가 한지붕 아래 모였다. 1985년 여의도로 이전할 당시, 대신증권은 총자산 1,239억원, 자기자본 299억원, 임직원 590명에 불과했다. 현재는 총자산 23조5,050억원, 자기자본 2조6,029억원, 그룹임직원 2000여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대신금융그룹은 명동 사옥명을 기존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Daishin 343’으로 변경한다. 사옥 주소인 ‘중구 삼일대로 343’에서 착안했다. 주소는 세계 어디에서든 하나 뿐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새로운 네이밍과 함께 대신금융그룹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서 가장 유니크한(Unique)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대신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찾아 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투자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 별첨 1. 대신증권 60년 발전사
# 별첨 2. 대신증권 60년을 수식하는 단어들

# 별첨 1. 대신증권 60년 발전사
대신증권의 출범
대신금융그룹은 지난 60년간 한국증권산업을 선도해왔다. 대신증권은 1962년 삼락증권으로 시작하여 1975년 故 양재봉 창업자가 중보증권을 인수해 탄생했다. 故양재봉 창업자는 금융으로 국가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금융보국의 신념을 통해 대신증권을 재창업 했다. 창업의 각오와 회사의 면모를 새롭게 하여 사명을 대신증권으로 변경하고 증권업 성장기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다.

97년 선제적 위기대응 돋보여
대신증권의 위기관리 및 리스크관리 경영은 한국금융계에서 손꼽힌다. 오랜 기간 숱한 위기의 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리스크관리 노하우를 터득했다. 대신증권의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1980년대초 경제 사회 혼란기, 1997년 외환위기, 1998년 대우채파동, 2000년대 초 소비버블에 따른 카드채 사태, 2008년 글로벌 신용위기 그리고 2011 그리스발 유럽금융위기, 2019 코로나 팬데믹까지 수많은 위기국면이 있었다. 대신증권은 이런 굵직한 한국 경제사의 위기 국면들을 극복하며 오늘까지 성장해 왔다. 1980년 한국증권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증권사(대우, 동서, 쌍용(현 신한금융투자), LG(현 NH투자증권), 대신) 중 대신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증권사는 회사가 없어지거나 경영권이 바뀌는 운명을 맞이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능력도 돋보인다. 1994년 종합주가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대신증권은 1995년에 보유하고 있던 상품주식을 대거 처분하여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했다. 경쟁사들이 대규모 주식을 보유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였다. 2년 뒤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이 부도사태를 맞게 되었다. 대형증권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사태가 벌어지면서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 없어졌고,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마저 돌아 비재벌 단독증권사인 대신증권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하여 무차입경영을 하던 대신증권은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IMF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펀드열풍이 불었던 당시 다른 증권사들이 20%대의 고금리의 대우그룹 회사채를 편입한 채권형 수익증권을 무차별적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시중의 자금은 증권사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신증권은 대우그룹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의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했다. 얼마안가 대우그룹이 부도처리되며 대우그룹 계열 기업의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에 대규모 환매사태가 벌어지면서 증권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대우채 위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대신증권의 리스크 경영은 빛을 발했다. 대신증권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구체화되기 전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2007년도 증권업계가 호황기를 보내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자기자본투자를 확대하고 지점을 증설하며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데 비해 대신증권은 오히려 속도를 늦췄다. 과도하게 진행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도 억제했고 기존 투자자금도 회수해 미리 유동성을 확보했다. 한국 증권사 중 최초로 해외DR 1억 2900백만 달러를 발행해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등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늘리기도 했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 운용규모도 대폭 줄였고 보유 채권은 안정성과 환금성이 높은 초우량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 위기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한파와 2011년 그리스발 유럽금융위기로 많은 금융사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준비를 충분히 해 온 대신증권은 오히려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대신증권의 ‘안전경영’은 2019년 코로나 위기국면에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증권업계가 호황기를 보내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자기자본투자를 확대하고 공격적으로 주가연계증권(ELS)를 운용한 데 비해 대신증권은 오히려 속도를 늦췄다. 회사의 자산을 마켓변동성이 작고, 유동성이 높은 글로벌 우량자산으로 교체해 온 것이다. 2015년 3조원에 달하던 ELS 자체헤지 리스크한도를 1천억으로 대폭 줄였으며, 뉴욕 맨하튼 중심으로 환금성과 수익성이 뛰어난 부동산 투자를 늘려 자산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점 위기관리회의를 통해 후순위채, 기업어음(CP) 등 유동성을 대폭 보강해 회사의 안정성을 높여 온 것도 주요했다. 

재무, 자금, 리스크 부문에서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수익모델을 개선하는 대신증권의 정도경영은 단기적 성장에 도움은 안 될 수 있지만, 오랫동안 회사를 한결같이 지탱해준 힘으로 작용했다. 특히, 위기국면에서 보여준 철저한 리스크관리 능력은 ‘위기 때 더 빛이나는 증권사’로 평가받고 있다.

증권 IT 부문의 선구자…HTS 원조
대신증권은 IT불모지였던 증권업계에서 혁신을 이끌어 온 IT선구자였다. 대신증권이 IT부문에서 기록한 ‘업계 최초’의 기록은 무수히 많다. 대신 최초가 곧 업계 최초였다. 1976년 증권업계에서 처음으로 전산터미널을 도입하고, 1978년 자체전산기를 가동시키며 전산 기반을 닦았다. 1979년 국내 처음으로 대형 전광시세판을 설치하고, 이듬해인 1980년 전국 영업점을 온라인화했다. IT기반 증권서비스를 선도한 선제적 투자는 업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1995년에는 업계 최초로 종합계좌시스템(One card system)을 도입해 하나의 계좌에서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1997년에 처음 선보인 대신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사이보스’는 대한민국 온라인 증권거래 혁명을 이끈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온라인거래가 미래 증권거래의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전사적으로 시스템 개발과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나선 결과다. 한국온라인 증권거래 플랫폼의 원조격으로 불리기도 한다. 온라인 누적거래액 1,000조원을 업계에선 최초로 돌파하는 등 대한민국 온라인증권거래 시장을 이끌었다.
업계최고 수준의 IT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대만의 대형증권사인 보래증권과 2004년 증권업계 최초로 자체개발 온라인주식거래 시스템을 수출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만디리증권, 태국 부알루앙증권에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수출하기도 했다.

명동에서 여의도로…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
대신증권은 1985년에 여의도로 사옥을 이전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며 대형증권사로 도약했다. 1980년대 중반 ‘큰 大 믿을 信’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이용한 광고를 앞세워 대신증권을 한국증권산업의 중심으로 끌어 올렸다. 특히, 기업을 공개하려면 대신증권으로 가란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공개(IPO) 부문과 회사채 인수 등 발행시장 부문에 있어서 대신증권은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호황과 증시활황에 힘입어 자본금 1808억 원, 전국 55개 영업점, 직원 1,700여 명에 이르는 초대형 증권사로 성장한다. 1984년 대신경제연구소, 1986년 대신개발금융, 1987년 대신전산센터, 1988년에는 지금의 대신자산운용의 전신인 대신투자자문을 잇달아 설립하여 종합금융그룹을 형성했다. 특히 1990년에는 증권업계 최초 순수 문화재단도 설립했다. 故 양재봉 창업자가 사재를 출연해 만든 대신송촌문화재단은 대신금융그룹의 사회공헌활동 창구로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소외계층의 장학사업, 의료지원사업, 학술지원사업 등을 해오고 있다.

증권 중심으로 조직 재정비 및 클린컴퍼니 재탄생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을 앞둔 10월 故 양회문씨가 그룹 부회장에 취임했다. 故 양재봉 창업자의 차남인 그는 취임과 함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체계를 재정립했다. 1998년 런던과 뉴욕법인을 폐쇄하고, 동경지점은 사무소로 전환했다.

故 양재봉 창업자는 2001년 현업에서 은퇴를 하고 양회문 부회장에게 2001년 회장직을 물려줬다. 2대 회장인 故 양회문 회장은 1975년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해 10년 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 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1년 회장 취임 후 故 양회문 회장은 회사의 내실을 다지면서 투명경영과 주주중심의 경영을 하며 대신증권을 초우량 클린컴퍼니로 재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신금융그룹은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의 증권전문기업으로 변신해 조직효율화를 이뤘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온라인 증권거래에 대한 선제적 투자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이때 대신증권은 경영효율성이 높은 지배구조우수기업, 주주중심의 경영을 하는 배당우수기업, 외국인투자가가 가장 선호하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2002년 업계 최초로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 우리사주조합제도)를 실시했다.

2004년부터는 이어룡 회장이 대신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다. 故 양회문 회장의 부인인 이 회장은 직원 및 고객과 격의 없는 소통으로 회사를 빠르게 발전시켜 나갔다. 이어룡 회장은 취임 이후 증권뿐 아니라 모든 계열사의 사업부문을 안정 궤도에 올렸다. 
 
■ 해외사업 확대…글로벌 IB 도약
대신증권은 일찍이 해외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해 일본 스팍스그룹(2005년), 닛코코디알그룹(2006년), 오카상증권(2012년), 중국 심천캐피탈(2007년), 자오상증권(2007년), 베트남 호치민씨티증권(2008년) 등 아시아 주요국가 대형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사업기반을 구축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2004년 대만 폴라리스 증권, 2005년 태국의 Set Trade사에 온라인 거래시스템을 수출했다. 2012년 4월에는 금융투자업계 최초로 인도네시아 현지 증권사와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을 배분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온라인시스템을 수출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만디리증권과의 온라인 협력사업은 2017년에 들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까지 구축하며 협력 파트너사와의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동일한 협력구조로 태국 부알루앙증권과 2016년 전략적 사업제휴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7년 7월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수출을 위한 본 계약을 체결했다. 

“고객이 먼저다”…’신뢰와 상생’ 가치 담아
대신증권은 2010년 새로운 금융환경과 도전과제에 맞는 서비스’ 혁신을 추진하면서 CI를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변경했다. 새로운 CI는 대신금융그룹의 경영철학인 ‘믿음경영’을 보다 발전시켜 ‘신뢰와 상생’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담았다. 회사가 고객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고객과 회사간의 진실한 신뢰관계를 통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새로운 CI개편과 함께 대신금융그룹은 ‘불확실한 금융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밸런스 철학을 정립하고 리스크 관리를 중심으로 고객의 수익과 안정의 투자밸런스를 잡는 ‘밸런스 캠페인’을 진행하며 고객과의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주치의 선포…WM중심의 비즈니스로 전환
2010년대 저금리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증권사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주식 위탁매매를 넘어 고객의 재무적 건강을 평생 책임지는 파트너로 변신한다. 대신증권도 2010년 ‘금융주치의 선포식’을 갖고 ‘파이낸셜 헬스파트너’를 미션으로 선포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가치도 고객 중심으로 바꿨다. ‘고객의 신뢰, 고객과의 상생, 고객을 위한 혁신’으로 정했다. 또한 자산관리 핵심이자 새로운 리테일 서비스인 ‘금융주치의 서비스’를 통해 장기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했다.

대신증권은 WM 부문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리서치에 기반한 WM영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2015년부터는 ‘달러자산에 투자하라’는 하우스뷰를 내세웠다. ‘달러’라는 무기를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방향을 제시했다. 하우스뷰가 유명세를 타면서 대신증권의 달러자산도 급성장을 헸다. 2015년 초 2,400만불에 불과하던 달러자산이 1년 반 만에 4억불을 넘어섰다. 달러RP를 비롯해 달러표시채권(KP물), 달러자산펀드, 달러ELS 등 다양한 달러상품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렸다.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
대신증권은 WM 중심의 비즈니스로 전환과 함께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금융투자업계의 대형화 바람 속에서 대신증권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혁신금융으로 재탄생했다. 대신증권은 과거 주식과 채권만 하는 회사였지만 주식과 채권도 하는 회사로 서서히 변해갔다. 금융과 부동산 계열사와의 연계영업을 통한 시너지창출에 주력했다.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2011년 8월, 중앙부산, 부산2, 도민저축은행의 자산을 P&A(자산부채인수) 방식으로 인수했다. 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에프앤아이, PE, 자산신탁 등을 잇달아 출범시키며 수익모델을 다변화했다. 저축은행은 출범 10년 만에 총자산 기준 15위권 회사로 성장했고, 에프앤아이는 주력인 부실채권투자를 넘어 부동산 등 대체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한남동 고급 아파트 ‘나인원 한남’ 개발사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자산운용은 패시브 펀드와 부동산 등 대체투자 펀드에 집중해 역량을 키웠다. 수탁고가 지난 10년새 5배 증가했다. 2019년 7월 자산신탁은 부동산 신탁업을 개시했다. 2020년 2월 리츠 AMC 인가를 받고 리츠 시장을 본격 공략하며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올해 상장을 목표로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를 준비하고 있다.

IB명가 재건에 나서다
대신증권은 1988년 업계에선 처음으로 M&A팀을 만들고 종합적인 기업인수합병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1991년에는 재무부로부터 업계 최초로 M&A주선업무 경영인가를 얻는 등 IB부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1990년대에는 수 없이 많은 인수주선 딜을 성공시키며 국내 IB를 석권했다. ‘인수대신’으로 명성을 떨친 시기였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발행사 최고재무책임자를 비롯해 증권 종사자들이 대신증권의 자료를 보며 IB업무를 이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2000년 초 침체기를 겪었던 대신증권 IB는 다시 한번 IB명가 재건을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조직을 확대하고,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하며 중소기업 상장 주관을 기반으로 리그테이블 순위 경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1년 IB명가 재건을 선언하고, 다양한 IPO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6년 5건에 불과했던 IPO주관건수가 2021년 16건까지 늘어났고, 최대 빅딜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공동주관을 맡는 등 대형증권사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업계최초 문화재단 설립…사회공헌 활발
“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사회 각 부문의 조화롭고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故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가 창업 직후부터 강조해 온 신념이다. 그는 1976년 장학회 설립 의사를 밝히며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한 여러 방안을 고민했다. 송촌장학회로 시작한 대신증권의 사회공헌활동은 1990년 업계 최초로 설립한 대신송촌문화재단을 통해 지원 규모와 대상 등이 확대됐다. 

올해로 31년을 맞는 대신송촌문화재단은 기본 재산 규모가 370억원에 이르는 대형 재단으로 성장했다. 우수한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매년 장학생을 선발 지원하고 있다. 문화예술과 학술연구, 의료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지금까지 140억원 이상의 성금이 사회 곳곳으로 흘러갔다.

30여년동안 대신송촌문화재단을 통한 지원층은 더욱 촘촘해졌다. 대신증권은 1996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구순구개열 환아 수술비 지원사업 등 의료사업에 힘써왔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구순구개열 환아를 위해 건국대, 부산대, 전남대 등 대학병원에 총 3억 8천만원 규모의 수술비 및 의료비를 기부해왔다. 지금까지 총 425명의 환아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른둥이들 의료지원을 시작했다. 이 밖에도 국립암센터 발전기금, 의료봉사 후원금 등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의료사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역사회 지원도 적극적이다. 대신증권은 2004년부터 전남 나주지역에 사랑의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매년 나주시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나주지역 일대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가정위탁아동 및 소년소녀 가정, 다문화가족, 노인요양원, 고아, 장애인을 직접 만나고 성금을 전달했다. 충북 괴산군에서는 저소득층, 중증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희망 네트워크사업’도 한창이다.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지원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단순 기부 활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임직원과 대신금융그룹 고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사회공헌 활동도 진행해왔다. 수재민 지원,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재난복구활동, 시각장애인 골프대회 개최, 연탄배달, 희망의 집짓기, 어린이 미니도서관 조성, 국제 아동돕기를 위한 모자뜨기, 크레온-북 릴레이 등 임직원참여 및 봉사활동을 추진한 바 있다.

■그룹의 해외투자 전진기지 세워
대신증권은 미국 뉴욕과 싱가포르, 일본 동경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부동산을 비롯한 그룹의 해외투자 전진기지 역할을 맡았다. 해외시장의 경쟁력 있는 대체투자 상품을 국내 투자자에게 선도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8월 설립된 싱가포르 법인은 증권금융, 금융IT, 부동산 등 각 계열사에서 영위하는 모든 비즈니스를 해외 현지시장에 접목해 해외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추진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미국 현지법인은 2018년 6월, 일본법인은 2020년 5월에 기존 동경사무소를 법인으로 전환해 설립했다. 현지 금융 및 부동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해외자산 관리 및 소싱, 주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룹 시너지 모은 전략상품, 리츠 출시…하반기 상장 목표로
대신금융그룹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그룹의 시너지를 모아 리츠상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로 하반기 상장이 목표다. 전세계 핵심지역의 부동산만을 추려 리츠에 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6~7월 중으로 국토부 영업인가 신청을 준비중이고, 프리IPO를 통한 기관투자 유치가 논의 중에 있다. 초기 리츠 설립은 시가총액 4,200억원 규모로 시작한다.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는 안정성과 분산투자 효과를 갖춘 유럽 및 일본 등 선진국의 우량자산을 담은 멀티에셋 전략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초기 유럽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와 일본 주요기업의 핵심지역인 지요다구에 위치한 A등급 코어 오피스, 출퇴근이 용이한 주오구 핵심지역에 위치한 멀티패밀리 임대주택 등의 편입자산으로 출범해, 미국 맨하튼, 유럽 프랑크푸르트, 파리 등에 위치한 우량 코어부동산을 편입해 나갈 예정이다. 연 5~6% 수준의 배당수익률을 목표로 하며, 배당은 반기마다 시행할 계획이다. 원금의 100%를 환헷지하여 환율변동 리스크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별첨2. 대신증권 60년을 수식하는 단어들
큰대 믿을신, 황소상, 사이보스, 크레온, 달러자산, 나인원한남, 배당기업

큰대 믿을신 : 대신증권을 수식하는 대표 브랜드 슬로건이었다. 고 양재봉 창업자가 출장길에 열차를 타고 가던 도중, 열차 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3,3조 가락을 느꼈고, 이를 회사 사명인 대신에 도입했다. 미래를 지향하는 진취적 기상과 함께 고객에게는 안심하고 투자자산을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을 심어준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1987년 10월12일 ‘큰大 믿을信’ 캐치프레이즈를 바꾼 대신증권 CF가 최초 방영이 되었고, 지금도 4~50대 이상에서는 증권회사하면 큰대 믿을신을 떠올릴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황소상 : 주식시장의 강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소상을 만들었다.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장 김행신 교수의 작품으로, 역동적인 대신그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황소를 사들여, 그 행태를 연구하는 등 1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기간 여의도 대신증권 사옥 앞을 지켜왔으며, 지금은 대신증권 역사관이 위치한 위례사옥 앞에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에 있는 황소상과 함께 여의도 3대 황소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이보스, 크레온 : 1997년 4월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국내에서도 온라인 주식매매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IT부문의 집중투자로 결실을 맺은 사이보스 시리즈는 대한민국 온라인증권거래 플랫폼의 혁명이자 한국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사용자들의 니즈를 직접 반영해 개발한 HTS로 유명했으며, 증권업계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HTS로 알려져 있다. 사이보스가 형님이라면 크레온은 형보다 나은 아우라 할 수 있다. 사이보스의 압도적 기능에 수수료는 1/10수준으로 저가수수료를 선호하는 온라인 트레이딩 투자자들에게 안성맞춤인 HTS, MTS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달러자산에 투자하라 : 대신증권은 2015년 ‘달러자산에 투자하라’는 하우스뷰를 발표했다. 통상적으로 증권사의 한 해 지수전망을 의미하는 하우스뷰가 아닌, 장기적인 전망에 기반해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투자전략을 제시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달러자산에 투자하라’는 하우스뷰는 투자대상이나 지역이 아닌 통화 관점의 포트폴리오 구축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자산배분전략을 제시해 업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배당 : 대신증권은 주주친화정책으로 유명하다.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을 통해 주주가치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대신증권의 배당정책은 안정적 배당투자를 원하는 주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IMF 이후 24년 연속 현금배당을 실시하고 있으며, 배당성향 측면에서 업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배당주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인원한남 : 나인원한남은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최고급주택단지다. 지드래곤, BTS 등 유명연예인과 기업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최고급 주택단지가 대신금융그룹에서 개발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6년 용산 외인아파트부지(니블로배럭스)를 6,242억원에 낙찰받아, 최고급 주택단지로 개발해 지난 해 분양을 마쳤다. 대신증권을 필두로 한 대신금융그룹의 부동산 경쟁력을 입증한 개발사업으로, 가장 최근에 공급된 대규모 최고급주택단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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